저는 한번 끝장(?)을 본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지 않는 습관이 있습니다. 세상엔 새로운 것이 너무 많아, 같은 걸 반복하기에는 제 삶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매일 똑같은 맛의 커피를 마시면서, 몇 년 전에 즐겨들었던 팟캐스트를 다시 듣는 사람 치곤 고약한 습관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제 습관이 많이 좋지 않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닫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한 번만 마주했을 때 갖게 되는 인상은 대개 모호하고, 그로부터 갖는 감정이나 생각들은 정제되지 않은 채 마구 뒤섞여 쏟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한번 누군가에 의해 그 모든 덩어리가 한 결말을 고하고 문을 닫으면, 그것을 나름대로 해석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침대로, 다시 일상으로 내던져지고는 하지요. 그래서 우연히 무엇인가를 다시 마주칠 때마다 큰 충격을 받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저같은 경우엔 특히 영화를 볼 때 그렇게 되더라고요. 어릴 때 읽은 소설이나,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들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합니다.

대개 시간 싱크대(!)로 쓰이는 비디오 게임도 그런 첫만남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결말을 보는데 필요한 시간이 긴 게임일수록, 플레이에 어느 정도의 헌신을 요구할수록, 이야기가 깊을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장르가 된 로그라이크(로그라이트) 게임들이 참 마음에 드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만남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놓은 장르이지요! 하지만 이 “쇼트 하이크”는, 로그라이크도 아니면서 제가 같은 게임을 세 번이나 다시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게임의 가장 압권은 역시 엔딩이겠지요. 우여곡절 끝에 산 정상에 올라 용건을 마친 주인공 앞에 갑작스레 상승기류가 펼쳐지고, 지금 빨리 타라는 재촉과 함께 그 기류에 오르면 멋진 음악과 함께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높이의 활공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게임의 모든 활공처럼 이 활공도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날고 맺을 수 있습니다. 시작 포인트로 돌아가서 별장의 문을 닫기 전까지는 엔딩 크레딧도 나오지 않으니, 사실 엔딩이라고 하기도 힘듭니다. 그냥 마음껏 다시 섬을 거닐 수도 있습니다. 이 시퀀스가 가장 멋진 이유는 역시 하산의 즐거움, 고생의 결과를 바라보는 즐거움, 클라이맥스의 즐거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