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 “쇼트 하이크”의 한 장면, 새의 모습을 한 두 캐릭터가 등대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게는 한 번 끝을 본 것을 다시 돌아보지 않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영화도, 책도 그렇고 심지어는 음악도 가끔 그렇습니다. 세상엔 맛보아야 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에 비해 주어진 삶은 그리 길지 않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까요. 시간 죽이는 걸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되었든, 그럴싸한 도전과제가 되었든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뒤는 좀체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손에 잡아야만, 달라진 저의 새로운 감상과 함께 잘못된 해석들과 졸린 눈이 놓쳐버린 것들이 내짖는 비명 가운데 설 때에야만 비로소 후회를 합니다.

《쇼트 하이크》는 이런 저조차도 거듭 플레이하게 만든 게임입니다. 로그라이크처럼 장르의 힘도, 일일 과제나 라이브 업데이트의 힘도, 여느 실시간 전략 게임의 스커미시1처럼 확률의 무한히 뻗어나가는 가지의 힘도 빌리지 않고 제 손을 곧잘 낚아챕니다. 마치 잘 만든 스네이크 큐브(루빅스 스네이크)와 같아서, 재빠르게 구형을 만들어놓고 책상 한 켠에 놓아둘 수도 있지만 다시 잡아서 네 발을 뻗은 강아지, 팔다리가 그럴싸하게 뻗은 로봇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광이 잘 나는 매끈한 표면을 문질러보면서 감탄할 수도 있는 게임입니다.

《쇼트 하이크》는 클레어라는 검푸른 새가 이모와 함께 놀러 온 섬의 높다란 설산에 오르는 이야기입니다. 플레이어는 섬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황금 깃털을 모아 섬 정상에 올라야 합니다. 황금 깃털은 클레어가 더 높이 날고, 벼랑을 더 높이 오르고 더 멀리 뛰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설산을 오르는 데에는 제법 많은 깃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눈썰미나 솜씨에 따라서는 그보다 적게 필요할 수도 있고, 섬 곳곳을 누비다보면 깃털을 넉넉하게 얻어서 설산을 더 손쉽게 오를 수도 있습니다.

섬엔 다양한 동물들이 지내고 있습니다. 낚시를 하고 암벽등반을 하고 모래성을 쌓고 파쿠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지요. “비치스틱볼”이라는 희한한 게임을 만들어서 즐기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들과 어울리다보면 자연스레 깃털이 모이지만 또 설산을 뒷전에 놓을 수도 있습니다. 뭐 어때요! 설산에서 용무를 마친 주인공이 산장에 돌아오면 게임의 엔딩이 나오지만, 산장에 돌아가지 않고 섬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 이 게임을 즐기는 더 재미있는 방법입니다. 산장에 돌아가도 또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죠. 설산에 다시 올라도 됩니다.

《쇼트 하이크》는 이렇게 하나하나가 잘 분절되어 있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스네이크 큐브처럼 어떻게 모아놓든 플레이어의 마음입니다. 메트로배니아 게임처럼 플레이어의 참여감(혹은 행위성, agency)을 고양하는 디자인이지만 여느 게임들과 달리 그 조각들이 소박해서 부담이 없고, 그 내용은 하나같이 작은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저같이 참을성 없는 사람조차 “100% 달성”의 강박, 게임의 모든 걸 맛보았다는 인증을 받아내고 저 멀리 치워버리고 싶은 강박에 잘 빠지지 않게 됩니다. 한번 마침표를 찍은 이야기가, 그 생김새가 마음에 들어 기쁜 마음으로 게임을 껐다가,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열어 이번에는 다른 모양으로 게임을 즐깁니다. 이번에도 클레어는 이모의 차를 타고 섬에 와서 설산 정상에 오를 것입니다. 토끼는 어김없이 머리띠를 잃어버렸을 거고요. 그럼에도 그 모든 이야기가 새롭게 즐거울, 놀랍고도 작고 사랑스러운 게임입니다.

저는 이 게임을 itch.io의 인종 정의와 평등을 위한 게임 번들로 처음 접했습니다. 게임을 압축 파일로 제공하는 플랫폼 특성상 컴퓨터에서 파일을 관리할 때 본의아니게 자주 마주치게 된 것도 거듭된 플레이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한 게임이라 스팀에서도 다시 구매해서 플레이했습니다. 게임을 즐기고 나서, 제작자인 애덤 로빈슨유가 GDC에서 포스트모템 발표를 한 것을 들으면 감상을 더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각주

  1. 전략 대전 게임 등에서 캠페인이 아닌 자유 전투 모드를 스커미시(skirmish, 소규모 전투)라고 부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