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게임 캐릭터의 모습

여러가지 꿈을 두고 방황하던 제 어린 시절, 그 꿈 중 하나는 번역가였습니다. 《챈트 오브 시날》(Chant of Sennaar)는 그 꿈의 단편을 실현시켜주는 짧은 게임입니다. 여러 언어로 계층들이 갈라진 한 도시 문명 속에서 뜻풀이 퍼즐을 하는 게임이지요. 물론 이건 번역가 혹은 통역가의 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인류학자, 민속학자의 일에 더 가깝겠지만요.

게임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단순명료한 질감의 시청각 요소들입니다. 내려쬐는 태양, 서늘한 빛깔의 요새, 어두컴컴한 탄광, 단색의 배경들 속에서 퍼즐을 맞추었을 때 반갑게 들리는 징글이나 획득한 단서가 내는 금속성의 소리는 참 기분이 좋습니다. 이 점은 예전에 즐겁게 플레이한 《오브라 딘 호의 귀환》이라는 게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최신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게임들의 화려하고 현실적인 묘사는 언제나 놀랍지만, 명료하고 깔끔하게 대상을 충실히 묘사하는 이러한 접근은 만날 때마다 새롭고, 이것이 작은 게임들에서 제가 느끼는 애정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제가 《오브라 딘 호의 귀환》을 플레이할 때에는 따로 노트에 추리한 내용을 적어가며 플레이했었는데, 《챈트 오브 시날》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게임이 각 표의문자 조각마다 짧은 메모를 할 수 있는 간단한 UI를 제공하는데, 게임플레이가 이 밖을 벗어나서 무언가 기록하고 분석해야 할 정도로 깊은 사고를 요구하지는 않는 수준입니다. 퍼즐은 굉장히 쉽게 구성되어 있고, 또 현실을 비틀어 적당히 짜여져(contrived) 있습니다. 입으로 내뱉은 생소한 언어의 문장이 글자로 알아서 척척 옮겨지다니, 영어를 듣는 것보단 읽는 걸 좋아했던 제게는 참으로 탐낼만한 세상이지요! 퍼즐을 찍어서 맞출 수도 있게 되어 있지만, 그렇게 어렵지가 않은 것들이고 찍어서 맞추는 행위가 경험을 크게 해친다는 생각이 들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참 멋지지만요. 한편 이 언어풀이 퍼즐이라는 주 게임플레이 루프는 게임의 최후반으로 가면 쓰이지 않게 되는데, 조금 아쉽기야 하지만 게임의 스토리와 길이를 감안하면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 퍼즐 루프를 이따금씩 끊어내는 주변 게임플레이 루프는 조금 어색한 면이 있습니다. 감시를 피해 은신하는 퍼즐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하기 위한 복선이 잘 깔려 있고 자칫 지겨워질 수 있는 전체 경험을 환기하는 데에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이후의 세계를 COVID-19 없이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 것입니다. COVID-19의 시기는 곧 거대한 생명정치적 위기, 의료 시스템 위기의 시기였지만, 그 여진은 차라리 사회문화적이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챈트 오브 시날》은 그 단절의 시기를 가로지르고 새로운 만남으로부터 희망을 얻는 짧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은 그리 희망차지는 않지만, 새 번역 기능 때문에 졸지에 바벨탑 이전 인류가 모여버린 X처럼 때로는 그런 작은 웃음이 필요하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