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생 시절 학교 앞에 있던 중고서점을 심심할 때마다 들락거렸습니다. 가끔 마음에 드는 책을 저렴하게 집어오는 재미가 있었는데, 하루는 한국 근현대사학자인 브루스 커밍스의 “Korea’s Place in the Sun”이라는 책을 몇 천원에 집어왔었더랬지요. 그 책을 동아리방에 들고 가니 후배가 커밍스라는 저자를 알아보고 “아 그 북침설 얘기한 사람 아닌가요”라고 하더라고요.
얼핏 역사공작단 팟캐스트에서 커밍스가 황해도에서의 군 움직임을 보고 (황해도에서 한국군이 남쪽으로 돌아가려면 38선을 넘어가기 마련이니) 오해를 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아요) 하여튼간에 커밍스로서는 조금 억울할 것도 같습니다. “커밍스=북침설 (혹은 남침유도설)“이 되기에는 그의 연구가 가지는 의의가 적지 않다고 하니 그렇습니다. 그의 주된 논지는 (물론 중요하지만) 개전 자체보다도 내전이라는 전쟁의 성격에 있었고 그에 따라 한국에서 그에 대응하는 여러 연구들(박명림 같은 연구가 유명하다고 합니다)이 있었기에 그런 의의들이 좀 더 편리하고 단순한 딱지로 사람들에게서 지워지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것이겠지요.
잡설은 생략하고, 한국전쟁에 대해 읽은 책은 그리 많지 않지만,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 이후로 간만에 한국전쟁에 관련된 새 책을 읽었습니다. 테사 모리스-스즈키가 엮은 “감춰진 역사, 아시아의 한국전쟁”이라는 책인데요, 한국전쟁에서도 특히 조금은 의외인 것처럼 느껴지는 주변국(혹은 주변부)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해 작전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은 일본인들과 그 일본인들의 “참전”을 어떻게든 잘 안보이게 하려고 했던 미국, 이제 유엔군의 주요 보급기지가 된 곳에서 얼마 전에 끝난 전쟁의 참상을 다시 떠올렸던 오키나와의 사람들, 북한에 말을 지원한 몽골과 그 교차점으로 잠시 번성했던 만저우리, 특수임무를 위해 포로수용소에서 차출된 중화민국 요원들, 인민지원군으로 동원되었던 국민당 출신 포로들, 거제도의 일본인 중공군 포로, 그리고 스파이 혐의로 납치되어 고문당했던 일본인 소설가 이야기까지. 하나같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이야기라서 이게 한국전쟁 얘기가 맞나 싶어집니다.
제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것은 일본 경비대의 소해작전과 오키나와, 그리고 몽골과 만저우리 이야기였습니다. 20세기 전장에서 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폴란드 기병인데, 한반도에서도 말이 군사적으로 유용하게 쓰였다니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주된 사용처는 물자 수송용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역시 역자가 지적했듯 일부 연구주제는 자료가 너무 제한적이고, 또 편향적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기도 합니다. 가령 전후에 중화민국으로 돌아간 TLO 요원들의 역사는 대부분 아주 나중에 채록된 이들의 구술이 자료로 쓰였는데, 본인 이야기인데다가 타이완으로 돌아간 이후에까지도 역사적으로 많은 질곡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보니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겠지요.
이 책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건 마지막에 붙은 역자 후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균형점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글이기도 하지만, 또 한국전쟁의 다른 해석을 두고 마치 마땅히 조명받아야 할 주인공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문장에서는 ‘그럼 어떤 내용이 가능한가’라는 반발심도 들었습니다. 물론 한국전쟁에 대해 다른 역사적 서술을 모두 배제하고 이 책만을 받아들인다라면야 그런 질문이 의미가 있겠지만, 저로서는 잘 납득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러한 질문에서, 한반도에 현존하는 역사적 조건을 주조한 사건으로서의 한국전쟁을 새삼 느끼게 만드는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테사 모리스-스즈키 외, (2025). “감춰진 역사, 아시아의 한국전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이상호, 박성진 옮김. ISBN 9791158668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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